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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ISSION UNIVERSITY

욕쟁이예수

박총   |   Apr 05, 2010
  • $22$15.4 (30 %)
  • 주문수량 권(EA)

  • 품절 - 주문불가
   
  • 페이지 : 309쪽
  • 무게 : 395g
  • 출판사 : 살림
  • ISBN : 9788952213822
  • 상태 : 품절
Overview

욕하고, 술 마시고, 파티를 즐기는 예수?
길들여지지 않은 맨얼굴의 예수를 만나다!

1등만 아는 세상, 꽉 막힌 교회에서 헐떡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인생 처방전!

예수님이 욕을 하셨다? 주먹을 쥐고 사람을 한 대 칠 정도로 격한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다고?
정말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이 한국어 성경(개역개정판)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예스런 맛이 물씬 풍기는 말로 번역되어 잘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는 쉽게 말해 “야, 이 마귀새끼야!”란 말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또 어떠한가? 성전에서 매매를 통해 치부하는 장사치를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으며 깽판을 부렸다.(마태복음 21:12)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Giotto)는 이 장면의 예수를 옆의 그림처럼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치켜들고 있는 모습으로 리얼하게 표현했다.
『욕쟁이 예수』는 이처럼 새로운 모습의 예수를 보여 주는 책이다. 저자는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며 신학과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고 있는 박총. 그동안 「기독교사상」 「복음과상황」 「큐티진」 등의 기독교 잡지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대한 성찰과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묵상을 통해 건져 올린 지혜를 나누며 나름의 마니아층을 확보한 젊은 그리스도인이다. 한국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상상하는 예수가 반쪽짜리에 그치고 마는 것을 극복하고, 예수의 총체적인 모습을 그려 내고자 이 책을 펴냈다.
한국 교회에서 예수가 보통 인자하고 점잖은 서양인으로 그려지는 데 비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예수의 모습은 자못 충격적일 정도로 발칙하다. 저자에 따르면 실제로 예수는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세상의 불의를 향해 거침없이 욕사발을 퍼부었고(욕쟁이 예수), 맛있는 술을 빚어 결혼잔치의 흥을 돋우었다(술꾼 예수). 종교적 엄숙주의자들과 달리 죄인들과 벗하여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한편(파티보이 예수), 인간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를 피해 도망할 정도로 겁쟁이가 되기도 했다(겁쟁이 예수).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그 나라가 지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 반기독교국가주의자로 자리매김했다(세속국가주의자 예수). 무엇보다도 예수가 전한 복음은 제국(로마)의 가치와 질서를 뒤엎는 전복적 메시지였다(반골 예수, 원조복음집 예수). 이처럼 기존의 교양과 상식(혹은 교리와 교회의 관습)을 뛰어넘는 예수의 모습은 독자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교회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이들의 가슴이 후련하게 한다.

좌절하고, 무심하고, 안이함에 빠져 있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사실 그간 한국 교회에서 소홀히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상황’에 대한 고민이었다. 성경은 열심히 읽지만, 정작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 세상에서 예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도, 고민하지 않았다. 영과 물질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나누는 이원론이 널리 퍼져 일상의 삶이 복음 전파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성직에 비해 다른 세속의 직업이 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저자는 한국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바로 이러한 이원론에서 파생된다고 파악,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일상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이 책의 가치가 가장 빛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모노태스커 예수’, ‘블로거 예수’, ‘찍사 예수’, ‘순결남 예수’, ‘연인 예수’, ‘철수 예수’, ‘창조영성가 예수’, ‘스님과 함께 일하는 예수’, ‘투표하는 예수’, ‘동네 예수’ 등 다른 글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리는 것, 연애와 결혼, 이름과 작명, 그리고 투표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크고 작은 것들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여기서 독자는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려 허둥대기보다는 한 가지 일에 온 마음을 쏟는 예수(모노태스커 예수), 사진에서 행복해 보이기보다 지금 이 순간 진실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예수(찍사 예수),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길가 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탄하는 예수(창조영성가 예수), 가진 것 없어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격려하는 예수(연인 예수), 현존하는 도시를 성시화하거나 한 국가를 기독교국가화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이웃 종교인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요청하는 예수(스님과 함께 일하는 예수)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예수는 대단할 것도 없는 매일의 일상을 따뜻하게 품고, 진정으로 의미 있게 하는 예수다. 이 책에서 설파하는 일상의 영성을 찬찬히 살펴, 신앙과 일상을 분리하여 일상을 하위에 두거나 신앙의 도구로 이해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한국 교회는 상당히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두었던 열정을 불러내 복음과 마주치게 하는 글쟁이 박총!
「큐티진」 2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뜨거운 열정의 글!
‘복음주의권 글쟁이’로 불리며, 쓰는 글마다 온라인상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오는 이답게 저자의 글은 재미있고 신선하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고민하지만 가슴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묻어 두었을 법한 사안들(그리고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보며 한 번쯤은 품었을 의문들)에 대해 깊은 성경 묵상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머리가 시원해진다. 또한 현실 비판에는 날을 세우는 한편 ‘잠자리와 입을 맞추는’ 특이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꽃이 피는 것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는 섬세한 감수성은 여느 시인 못지않다. 이 책은 맥주잔을 손에 들고 감격하여 찬양하는 그리스도인, 일상을 성심껏 일구며 예수의 자유를 누리는, 품 넓은 그리스도인들의 출현을 예고한다. 그리고 독자는 왜 영성이 깊은 사람은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성경 묵상을 돕는 월간지 「큐티진」에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받으며 연재되었던 칼럼 ‘이 시대의 분닥세인트들과 나누는 이야기’ 중 각별히 의미가 깊은 글을 추려 엮어,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되새겨봄 직한 스물다섯 가지 예수의 얼굴을 그려 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주님은 한술 더 떠서 손수 당신의 형상으로 지은 존재에게 ‘마귀 새끼’(요 8:44)라고 퍼부음으로써 입심에 관한 한 그분의 친척 형을 훌쩍 뛰어넘으셨다. 누구보다 주님을 닮고자 했던 바울도 주님의 걸쭉한 입담을 본받음에 거침이 없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개놈들’이라 부르기에 서슴지 않았으니 말이다(빌 3:2). 하지만 우리가 이들 3인방이 퍼부은 욕사발이 문제가 되기는커녕 거룩하다고까지 느끼는 것은 이분들의 욕에 의분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_본문 16쪽에서

대학 입시가 점점 더 돈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사교육은커녕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저소득층을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드는 교육 현실을 보면서도 울분 한 점 없이 그저 내 자식과 우리 교회 아이들이 주의 능력을 힘입어 이 무한입시경쟁에서 승리하도록 기도하자는 교인들을 보면 기가 차서 고개를 흔들게 된다. 의분 없이 나이브하게 하는 기도는 사실 기도가 아니다. 거대한 불의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할 때에야 전능자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진정한 의미의 기도와 관상(觀想)이 시작된다.
정의는 팽개치고 종교 의무만을 행하는 백성에게 “너희 제사가 역겹고 제물은 구역질이 난다.”(사 1:13)고 하신 하나님은, 정작 의분을 품어야 할 일에는 지독한 불감증에 걸려 있으면서 비본질적인 욕 한 마디에 길길이 날뛰는 우리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똑같이 반응하지 않으실까.
_본문 20-21쪽에서

내가 속한 단체나 교회는 건강한 공동체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갖가지 측정기를 갖다 댈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인다운’ 모범생 이미지와 정답만이 용납되는지, 아니면 은혜에 반하는 모습과 도발적인 발언도 흔쾌히 나눠지고 받아들여지는지를 따져 보면 얼마나 건강하고 성숙한 공동체인지 대략 가늠이 될 거라고 본다. 물론 솔직함은 신중함과 짝을 이루지 못할 때에 여린 자매형제를 베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창세기 18장 12절과 13절을 비교해 보라. 심지어 하나님도 아브라함이 상처받지 않도록 사라의 말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의 은혜 때문에 모든 언행심사를 스테레오 타입에 끼워 맞추려 드는 이른바 ‘은혜 필터링’이 강하게 작용하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닌 폭력과 파시즘이 되고 만다.
_본문 31-32쪽에서

하나님의 뜻에만 ‘올인’하는 것이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지표로 간주되지만 많은 경우 이는 이중적 긴장에서 발을 빼는 도피처로 악용된다. 단언하건대 예수 믿는 우리네 삶이란 긴장 속을 살아 내는 삶이다. 토머스 머튼은 ‘기독교 신앙은 확신과 평안의 원리 이전에 의문과 갈등의 원리’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긴장을 원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교회와 세상, 은총과 자연, 내세와 현세 간의 팽팽한 장력을 기피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전자로 기울면 이원론이 되고 후자로 기울면 세속주의가 된다. 헌신되었다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이원론을 선택한다. 이원론은 답이 딱 떨어지기 때문에 심령이 아주 편하다. 번민도 갈등도 없다. 교회에 대한 나의 헌신이 부족한 것만을 탓하면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이상의 영향력은 없다. 왜냐하면 긴장에서 오는 창조적 에너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_본문 40-41쪽에서

흔히 디오니소스를 술의 신이라고 하지만 ‘그 백성을 위해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시는’(사 25:6) 여호와야말로 참된 주신(酒神)이시다. 그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든 아들은 최상급 와인 대접을 그의 첫 이적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술잔치를 베풀고 아들은 술잔치를 계속하게 했으니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 이 아들 되시는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술을 잘 빚기만 할 뿐 아니라 술을 잘 마시기로도 유명했다. 갈릴리 근방에 이름난 ‘술꾼’(oinopotes, 마 11:19, 눅 7:34, 쉬운성경)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호사가들의 농에서처럼 우리 주(主)님은 실로 주(酒)님이었다.
_본문 48쪽에서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설거지 할 때조차도 기도한다’는 일부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말이 굉장히 깊은 신앙심을 보여 주는 것 같지만, 실은 설거지 하는 동안 머릿속을 다른 기도제목으로 꽉 채우는 것보다는 설거지 그 자체를 주께 하듯 하는 것이 더 깊은 기도요, 더 깊은 영성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설거지나 회사일 같은 일만 아니라 놀 때도 온 맘을 다해 놀아 보라.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노는 인간(homo ludens)’으로 지으셨다는 것, 신(神) 나는 놀이 속에 신명을 일으키는 성신(聖神)이 계시다는 것, 그리
고 놀이 치료사들이 말하는 놀이 속에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_본문 80-81쪽에서

세상의 언어, 혹은 제국의 언어는 ‘불가피성’이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위험한 삶을 꿈꾸는 위험한 상상력을 억압하고 전복적인 삶을 감행할 용기를 봉인해 버린다. 하지만 내가 늘 감탄하며 읽는 월터 브루그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수를 따르는 우리네 삶이란 불가능성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먹을거리와 입을 옷이 있다면 족한 줄 알라는 말씀에 ‘원시적’으로 순종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다스림)와 그 정의를 구하며 살아가다 보면, 도리어 돈과 성공을 구하며 살았던 이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역설을 삶으로 증명해 보라. 그것이야말로 예수 믿는 재미이자 짜릿함이 아닐까.
_본문 130쪽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고로 놀기 좋아해야 한다. 잘 놀다 보면 구원사역도 이뤄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삭개오를 정죄할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증오와 분열만이 더해졌을 뿐이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서 더불어 먹고 마실 때에 그가 변화되었고 그의 집에 구원이 선포되었음을 기억하라.
_본문 185쪽에서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그 법칙에서 파생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세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힘이 아닌 주님의 힘을 의지하겠다는 겸손 아닌 겸손과, 이 복음 아닌 복음을 전하려는 사명 아닌 사명을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이 제시한 게임의 룰을 따르되 믿음으로 더 큰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게임의 룰, 즉 하나님 나라의 룰에 따라 게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왜 주님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신 것인지 알게 된다. 말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처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는 로마의 복음을 부러워하고 추구했던 것을 회개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역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돈과 성공과 일류대(최고급 유치원, 특목고, 8학군을 포함한)를 더 의뢰했고, 섬기는 자가 되라는 가르침 대신 어떻게 해서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려고 해 왔고(교회는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서 섬기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섬기는 것만을 가치 있게 여겨 왔다),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대 주라는 말씀에는 ‘아멘’ 하면서도, 실제로는 강자 숭배의 로마를 따라 당하기 전에 먼저 때리고, 무시받기 전에 먼저 무시하고, 버림받기 전에 먼저 버리는 법을 가르쳤던 우리가 아니던가?
_본문 198-199쪽에서

대한민국은 기독교국가 아닌 세속국가로 남아야 한다. 서울을 비롯한 모든 도시는 성시(holy city)가 아닌 세속도시(secular city)로 남아야 한다. 심지어 기독교인이 100퍼센트가 되어 만장일치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기독교국가로 선포하고 법을 기독교식으로 고치고 교육을 기독교화하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새로 태어날 우리의 자녀 중 누군가는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교회를 떠날 수도 있고, 5천만 명 중 단 한 명이라도 내키지 않는 기독교 법을 지키고 달갑지 않은 기독교 교육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말마따나 전체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힘을 가진 한 사람이 전체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다.
_본문 222쪽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조금만 더 가동해 보면 하나님이 아기로 오셨다는 그 익숙한 사실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를 신령한 젖과 땅의 소산으로 친히 먹이시는 엘 샤다이(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의 하나님이 한 여인의 젖을 빨아 생존과 성장을 도모한 이 역설,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엘로이(하나님이 감찰하시다)의 하나님이 요람에 눕혀져 그 몸짓 하나 하나가 육신의 부모에게 감찰되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모든 허물을 씻기신 여호와 카데쉬(여호와가 거룩하게 하시다)의 하나님이 사람의 손에 의해 몸이 씻기고 똥오줌이 닦이는 역설, 인간의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시는 여호와 이레(여호와가 준비하신다)의 하나님이 인간 부모의 손에 모든 필요를 공급받게 된 역설, 인간에게 평화를 주시는 여호와 샬롬(하나님은 평강이다)의 하나님이 사람의 자장가를 들으며 평화롭게 잠든 이 역설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_본문 286쪽에서

prelude 길들여지지 않은 예수 _반쪽짜리 예수를 넘어서서

욕쟁이 예수 1 _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
욕쟁이 예수 2 _하나님 앞에서 쿨한 척하지 마라
양다리 예수 _‘하나님의 뜻’은 위험하다
술꾼 예수 _음/금주는 아무나 하나
겁쟁이 예수 _짝퉁 공포에서 진퉁 공포로
모노태스커 예수 _내 경험 속에 내가 현존하기 위하여
블로거 예수, 이어폰 꽂은 예수 _싸이월드와 MP3 플레이어의 영성
찍사 예수 _기독교적 사진 미학에 관하여
순결남 예수 _형제들을 위하여
연인 예수 _추억은 방울방울
철수 예수 _작명의 영성

interlude 날마다 죽는 예수

창조영성가 예수 _생태적 묵상, 비언어적 묵상, 오감 묵상
켈틱 예수 _한국 교회와 켈틱 영성이 입 맞출 때까지
파티보이 예수 _축제날 같은 인생을 살아라
원조복음집 예수 _너희가 복음을 아느냐
반골 예수 _Don’t Play the Game by Their Rules
세속국가주의자 예수 _대한민국이여, 세속국가로 영원하라!
스님과 함께 일하는 예수 _하나님의 은혜로서의 불교
투표하는 예수 _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동네 예수 _지역적인, 너무나 지역적인
웰빙 예수 _못나게 살아가려는 이들을 위한 노래
유색인 예수 _다민족 국가를 준비하는 노래
목수집 큰애 예수 _My Best Friend Was Born in a Manger

postlude 변두리 예수 _이 시대의 변두리 성자들에게 바치는 노래
고마움을 흘려보내며

권정생 선생은 좋은 글이란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글이라셨다. 교회 안에는 너무도 지당하여 그 누구의 마음도 불편하게 하지 못하는, 그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착한 말들만 넘쳐난다.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분노가, 그분의 독설 속에 담긴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눈물겨운 사랑을 대언해 주는 ‘참 말씀’의 기갈 속에서, 다들 꺼내 놓고 말하기를 불편해 하는 주제들과 일상의 다양한 영역들을 이토록 훌륭한 균형감으로 풀어 낸 글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민호기_(소망의 바다, 찬미워십 대표, 대신대 실용음악과 교수)

일상의 희로애락보다는 천상의 무지개 이야기만 늘어놓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쓴 책은 대부분 듣고 잊어버리는 설교 같아서 잘 안 읽히거나 뻔한 내용이 많다. 그런데 박총은 다르다. 그는 우리가 살며 부딪히며 고민하는 주제들을 조금 과감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 놓는다. 삶은 치열하고, 생각은 진지하지만, 글은 발랄해 독자들을 즐겁게 만든다.
| 서재석_(Young2080 대표)

‘설거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농담이 치유가 되는’ 일상생활의 영성을 설파하는 저자의 영성이 극진하다. 유진 피터슨의 깊이와 켄 가이어의 섬세함과 도널드 밀러의 후련함이 버무려진 한 그릇 글 밥을 맛깔나게 차려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준비된 잔치 음식, 맛있게 드시라!
| 안상현_(미국 코스타 전임 훈련 사역자)

이런, 박총이 또 책을 냈다. 그는 매번 기상천외한 문장과 사고로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번 책도 보아하니 내용이 과도한 흥미를 유발하여, 읽고 시험 들기 딱 좋으니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 그러니, 언론과 출판사는 제발 이 책의 등장을 선량한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
| 양희송_(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박총은 ‘거친 정직함’이 ‘미끈한 경건함’보다 낫다고 판단하신 하나님의 속마음을 아주 잘 드러낸다. 제목에 대해 말하자면, 욕설에 대해 우아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미의식의 한계다. 욕은 인생의 뒤틀림과 고통, 아픔과 때로는 정의로운 분노를 거칠게 드러내는 하나님의 직설법이다. 하나님이 더 나은 진솔한 삶의 표현으로 욕설을 받아들이셨고, 또 선지자들과 예수님이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으셨다는 것을 박총은 놓치지 않는다.
| 이문식_(산울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