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천하를 소동케 하는 자들’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가 많아서 천하가 소동하거나, 아니면 하도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 가만두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거나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은 어떤가요? 인기가 많아서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오나요? 가만두면 안 되겠다고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소동이 일어나나요? 오늘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매력적이지 못한 걸까요?
성경에서 예수님만큼이나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온 유대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세상이 주목한 사람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 노동자, 농민 등 나이나 계급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몰려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세례 요한이 죽은 뒤에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부활한 세례 요한이라 믿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막 6:14-16). 그렇게 보면 당시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그의 어떤 점이 그토록 사람들을 매료시켰을까요? 세례 요한의 무엇이 그토록 매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추종한 것일까요? 이것을 알아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23쪽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간단합니다. 세상에 취해서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구하고 추구하는 것이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데, 거기에 어떤 신비로움이나 매력이 있겠습니까? 세상을 부러워하는 그리스도인을 사람들은 되려 천시하고 멸시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혼인 그리스도인이 배우자감으로 세속적인 기준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사람을 꼽는다고 합시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도 세상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을 배우자감으로 찾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가치에 충실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리스도인을 보고 차원이 다른 고결함을 지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33-34쪽 중에서>
변하지 않으면 변질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는데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변질되지 않더라도 복음이 변질됩니다. “예수 믿어도 형편없네!” 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식에서 복음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복음 되게 하려면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 성령을 받기 전과 후에 얼마나 변화했습니까? 집에 들어오면 양말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던 아들이 예수님을 믿더니 양말을 빨기 좋게 벗어 놓고, 엄마가 청소를 하든 설거지를 하든 아무 상관도 않던 딸이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다면 옳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눈에 띄는 변화를 가장 가까운 엄마가 인정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변화를 가족들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직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의 변화를 보고 가족과 친구들이 충격을 받을 만큼 알아봐야 그리스도인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65-66쪽 중에서>
우리는 나를 주목하는 데 자꾸 걸려 넘어집니다. 교회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걸핏하면 넘어집니다. 남보다 조금 잘하는 것이 있으면 으스댑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면 우쭐해져서 금세 교만해집니다. 그런 순간에 예수님을 주목하기가 참 힘듭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예수님께 돌려놓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단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목하게 합니다. 자기의 영성, 경건함, 지혜에 주목하게 하는 것은 모두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 영화롭게 합니다. 자기에게 쏠리는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주목받고 있을 때, 내가 주인공이 되었을 때 “예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94-95쪽 중에서>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에 비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시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철제 침대에 눕혀 그보다 짧으면 다리를 늘이고 그보다 길면 다리를 자른 잔인한 인물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형상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심한다면 수많은 것들, 예를 들어 세상을 즐기고 누리고 취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때로는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시련과 박해를 견뎌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정체성을 찾고 있습니까? 요즘 학생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성적에서 찾습니다. ‘나는 1등하는 우등생’, 혹은 ‘나는 40등 하는 열등생’ 식으로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자신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는 예쁜 얼굴이나 몸매로 나의 나됨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하거나 어릴 때부터 두껍게 화장을 하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내하는 등 어떻게든 예뻐지려고 시간과 정성을 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좇는 일은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Part 1 세상이 그를 주목하다 세상이 나를 주목하는가
01 · 그는 세상에 취하지 않고 진리를 통찰했다
02 · 그는 변질되지 않고 변화했다
03 · 그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용기가 있었다
Part 2 그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다
내게서 예수님이 보이는가
01 · 그는 칭찬받을 때 교만해지지 않았다
02 · 그는 예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다
03 · 그는 예수님만 아는 바보였다
Part 3 그에게서 사명을 배우다
나에게 사명이 있는가
01 · 그는 하나님께 인생 전부를 걸었다
02 · 그는 목표를 세워 성취했다
03 · 그는 광야를 기뻐했다
Part 4 악을 선으로 바꾸다
맞은 대로 돌려주는가
01 · 그는 억울할 때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02 · 그는 악에 사랑과 용서로 반응했다
03 · 그는 성령으로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