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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USA PACIFIC UNIVERSITY FULLER THEOLOGICAL SEMINARY WORLD MISSION UNIVERSITY

간절함의자리

오지영   |   Sep 19, 2018
  • $18.33$11.91 (35 %)
  • BUSINESS DAY 1~2일 내 출고 예정
  • 주문수량 권(EA)
   
  • 페이지 : 224쪽
  • 무게 : 401g
  • 출판사 : 두란노(도서)
  • ISBN : 9788953132559
  • 상태 : 재고있음(3)
Overview

성서 원문과 성서 시대적 배경 연구를 통해
생생하게 다가온 예수님의 공감과 사랑


갈릴리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여 한두 번 다녀온 듯한 동네이다. 갈릴리는 어부들의 치열한 경쟁이 있는 일터요, 성공과 실패가 있고, 가난과 번영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정치인이 있었고 세리가 있었으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있었고 빈 그물을 보며 막막한 어부가 있었고, 끊이지 않는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외로운 여인이 있었다. 성경 속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찾아온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이 만나 주신 사람들을 저자는 친절하게 소개한다.


저자 오지영은 무디신대원 중 한 해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존더반 아카데믹의 ‘올해의 성서언어상’을 히브리어와 헬라어 두 개 모두 수상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이를 토대로 성서 원문과 성서 시대적 배경 연구를 통해 누가복음 4-8장에 나타난 갈릴리의 시대적 상황과 갈릴리의 사람들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캐릭터화되어 전달된다. 빈 그물이 부끄러웠던 어부, 동네 사람들에게 따돌림 받고 죄인 취급받았던 나병 환자, 세리라는 딱지로 사람들에게 천대받았던 레위인, 회당에 들어왔지만 귀퉁이에 간신히 앉아 예배 드리던 손마른 자들이다. 저자는 “주님이 없으면 호흡할 수 없는 사람들, 주님이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는” 갈릴리 사람들을 주님이 마주보아 주셨다는 데 주목한다. 이 지점에서, 갈릴리는 공간뿐 아니라 동네 어귀를 걸어다녔을 사람들에게서도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고통의 오늘을 버티는 영혼들에게 주님이 오셨다
구원은 오늘, 그 간절함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단번에 수많은 사람을 감화시킬 능력이 있고, 더 넓은 세상에서 흥하고, 구세주인 것을 드러내야 하는 주님은 왜 갈릴리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주셨을지 저자는 성경에서 답을 찾는다. 저자는 성서언어의 비전문가인 독자들이나 초급반의 실력을 가진 이들에게 성서 시대의 언어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듯이, 예수님의 언어와 갈릴리의 사람들의 언어를 통역해 준다. 원문에 충실한 해석들은 곁들여지는 성서시대 배경과 성경 속 이야기들을 통한 깊은 묵상으로 나아가, 그들 옆에 조용히 앉아 울고 웃으며 주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한다. 그리고 머리를 넘어 마음 깊은 곳을 만지시는 주님을 보게 한다. 경쟁의 현장에서 실패로 낙담한 시몬을 만나 주셨듯, 예수님은 일터와 가정에서 절박함으로 나아간 우리도 만나 주신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오랜 아픔의 땅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면, 주님을 만나 영혼이 소생하기를 염원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라. 돌아보면 누구 하나 손잡아 주는 이 없고 목놓아 울음 섞인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주님을 찾은 기억이 있다면, 성경의 이야기들이 왜 여전히 유효한지. 왜 그때 주님이 그 갈릴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주셨는지, 지금 내 삶에 말 걸어오시는 주님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일터와 삶의 터전 그 어디에서 주님은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물이 비어 있다고, 혼자뿐이라고, 잦아들지 않는 파도에 떠내려갈 운명이라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과 질병이 원망스럽기만 하다고 주님께 나아가자. 간절함의 자리, 바로 그곳에 주님은 우리가 나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 갈릴리의 영혼들에게 그리 하셨듯이.


책 속으로


시몬은 갑자기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 버립니다! 이 깊은 물에서 시몬이 물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님의 그물망 안에 포획되었음을 깨달았던 겁니다. 시몬이 던진 그물 안으로 들어온 물고기는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얻은 소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혼동할 수 없습니다. 그의 능력으로는 이렇게 많은 물고기를 절대 잡아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 시몬의 배에 잡혀 온 물고기들은 ‘물’이 없기에 모두 죽어야 할 운명에 놓였습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어떠합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그물에 걸려 있는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하면 ‘생명의 물’을 얻지 못한 물고기처럼 죽어 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만이 시몬을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_37쪽에서


절박함 가운데 드디어 나병 환자는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통로를 찾았습니다. 그 통로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것이 나병 환자의 기도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면’이라고 시작하는 겸허한 기도입니다. ‘원하시면’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델로’θέλω: thelō입니다. 그냥 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유념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의지가 동반되는 동사가 ‘델로’입니다. _54-55쪽에서


예수님은 아무도 세심하게 바라봐 주지 않는 레위를 오늘 보아 주십니다. 이때 ‘보다’라는 헬라어 동사는 ‘데아오마이’θεάομαι: theaomai입니다. ‘데아오마이’는 그냥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 보게 된 것도 아닙니다. ‘데아오마이’는 의도를 가지고 진지하게 지켜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깊이 주목하는 것입니다. 또한 방문할 목적으로 보는 것이 ‘데아오마이’입니다. 가시 영역을 뛰어넘어 깊이 숙고해 관찰하는 것이 ‘데아오마이’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 사람에게 ‘데아오마이’하신 것은 오늘 예수님이 만나셔야 할 간절한 영혼이 다름 아닌 더러운 죄인 세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_72-73쪽에서


예수님은 지체 없이 손 마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손 마른 사람은 적이 놀라는 표정입니다. 그가 오늘 이 회당의 한가운데 서게 될 줄은 기대하지 못했을 테지요. 늘 오른손이 불편해서 사람들 앞에 서기엔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사람들 앞에 나서려면 수치감이 앞서기만 할 테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선 외곽에 앉아 있는 것이 편안하다는 걸 우리는 이해합니다. 눈에 띄지 않아 남몰래 고뇌할 수 있는 장소. 그 자리가 손 마른 사람의 자리였던 겁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바로 그 장소, ‘한가운데’로 그를 부르십니다. 회당 높은 자리에 앉은 바리새인들이 확연히 볼 수 있는 한가운데!  _92쪽에서


백부장에게 종은 바로 아들과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됩니다. 이제야 우리는 의아함을 벗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종, 아니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백부장은 세상이 무너지듯 절망스러웠겠지요. 종을 살리는 것은 그에게 과연 ‘악시오스’, 즉 합당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결론을 얻습니다. 강하고 능력 있는 백부장의 자존심은 종이 죽어 가는 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항상 존앙받아야 하기에 사람들 앞에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도 종의 병듦 앞에선 지켜 낼 수 없습니다. 백부장의 아킬레스건을 여지없이 치고 들어오는 공격. 그리고 바로 이 연약한 순간에 백부장은 믿음이 발동됩니다. _109쪽에서


과부는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가장 빈천한 존재입니다. 아무도 과부를 위해 ‘합당’하다고 간청해 주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이 과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전 소망을 걸었던 아들이 죽었습니다. 아들은 이미 시체입니다. 소망?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간절히 바라볼 힘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연약하다 못해 이미 쓰러져 버려서 예수님을 탄복시킬 믿음조차 없는 여인입니다. 모든 게 끝입니다. (중략) 바로 이 위태로운 경계에 예수님이 지금 서 계십니다. 그러나 우린 잊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그런 예수님과 죽은 자가 대면한 곳, 바로 나인 성문 앞입니다. _123-124쪽에서


죽음의 길을 걷게 될 그 발을 보며 여인은 미리 슬펐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여인은 그 발에 향유를 붓습니다. 여인은 거기서 행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춥니다. 그녀의 입맞춤은 형식상의 입맞춤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을 다하여 입을 맞추는 키스입니다. ‘카타필레오’καταφιλέω: kataphileō라는 헬라어 동사가 쓰였는데, 이는 유대인의 관례로서 입을 맞추는 것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인사치레로 입을 맞출 때는 그냥 ‘필레오’φιλέω: phileō라고 하면 됩니다. ‘카타필레오’는 깊은 사랑이 담긴 마음의 키스입니다.  _141-142쪽에서


제자들의 표정이 굳어 있는 까닭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막연함이 아니고 깊은 물을 건너가야 하는 구체적인 두려움이라고 여겨집니다. (중략) 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어조가 사뭇 엄중했기 때문입니다. “건너가자”라고 하실 때 예수님은 헬라어 동사 ‘디에르코마이’διέρχομαι: dierchomai를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그냥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역경과 장애를 통과하고 끝까지 나아가다’라는 심도 있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애물을 통과하며 건너가는 것. ‘디에르코마이’입니다. 갈릴리 바다 저편은 어떤 곳이기에 그럴까요? 예수님은 건너편, 남동쪽으로 내려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_153-154쪽에서


예수님께 ‘손을 대는’ 행위. 과연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예수님은 급한 걸음을 여기서 멈추시고 이 여인을 필사적으로 찾아내려고 하시는 걸까요? 여기서 ‘손을 대다’라는 (중략) 동사 헬라어 ‘합토’ἅπτω: haptō는 ‘점화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불을 붙이는 행위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 동사는 또한 ‘친밀히 만지다’, ‘붙좇다’, ‘묶다’, ‘간섭하다’, ‘개입하다’, ‘획득하다’라는 뜻까지 수용하는 단어입니다. 여인은 에워싸고, 밀고, 압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그저 살짝 만진 게 아닙니다…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꽉 붙들었던 겁니다. 생명을 붙들 듯. _194-195쪽에서


추천사
서문
프롤로그 만남을 기다리며


첫 번째 만남
비어 있는 그물을 손질하는 영혼에게
생명의 그물에 걸리다 눅 5:1-11


두 번째 만남
공동체에서 소외당한 아픈 영혼에게

주여, 원하시면! 눅 5:12-15


세 번째 만남
많은 것을 가졌으나 정작 홀로인 영혼에게
열린 식탁으로의 초대 눅 5:27-32


네 번째 만남
한 걸음도 내디딜 힘없는 영혼에게
오른손을 내밀라 눅 6:6-11


다섯 번째 만남
연약한 가운데 주를 바라보는 영혼에게
합당하오니 눅 7:1-10


여섯 번째 만남
자식을 잃은 어머니처럼 지금 통곡하는 영혼에게
‘지금’ 우는 자 눅 7:11-17


일곱 번째 만남
마지막 기회 앞에 전부를 드린 영혼에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 눅 7:36-50


여덟 번째 만남
풍랑을 뚫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영혼에게
호수 저편으로 눅 8:22-25


아홉 번째 만남
어딘가에 묶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영혼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눅 8:26-39


열 번째 만남
죽음과 질병에서 “달리다굼”이 간절한 영혼에게
야이로, 그를 깨우소서! 눅 8:40-56


에필로그 좋은 친구 여러분께 “카이레테!”
주(註)
참고 문헌



만남은 우리의 삶에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만남 가운데 아마 신앙만큼, 그리고 이 신앙이 기독교 신앙이라면 예수님만큼 중요한 분은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친절하게 이끌어 줍니다.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 소외된 자와 죄인들을 찾아오셔서 공감과 사랑을 보여 주신 ‘갈릴리 예수’를 직접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_ 강영안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 교수, 서강대 명예교수


저자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인물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있다. 장면 장면마다 연약한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이 정성스럽게 그려진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며 우리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만나며 감탄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깊은 경건과 아울러 몸이 상할 정도의 연구의 수고가 배어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측량할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한다.
_ 김진옥 합동신학대학원 원문연구소 디렉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