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나는 크리스천인데도 왜 생업에 허덕일까?
‘먹고사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사랑의 수고로 ‘왕업’을 이루는 일터 생활 안내서!
방선기 목사, 안정규 선교사, 이병주 변호사 추천!
인간은 일을 하도록 창조되고 부르심을 받았다. 인간은 에덴에서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으며, 천국에서도 일할 것이다. 일은 인간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이 되었고 인간이 생명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크리스천 직장인과 사업가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우리가 오늘 작성한 업무 서류와 맞이한 손님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먹고사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사랑의 수고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게 과연 가능할까? 바로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이 시작되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이 교회를 넘어, 일터와 일상의 영역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길을 찾는 목회자 신광은 목사는 하나님 나라 신학의 기초 위에 일터 신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그리고 변화되는 일터 환경 속에서 소명론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 저자는 한국교회에 일터 사역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된 일터개발원 연구모임 안에서 4년 가까이 치열한 토론과 논쟁 과정을 거치며 초고를 다듬었다.
1세기 크리스천 직장인과 사업가가 알려 주는
그리스도인으로 일한다는 것
저자는 일터 신학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방식을 차용했다. 크리스천 노예 셉티무스와 사업가 코르넬리우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 저자가 창조한 1세기 로마의 가상 도시 오스티아와 등장인물은 마치 초대 교회와 교인들이 살아난 것처럼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현대 크리스천 직장인과 사업가와 유사한 두 인물이 크리스천의 일의 원칙을 배워가며 생업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인 왕업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소명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일터에 임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으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론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소명의 기존 정의를 톺아보고 새롭게 정의 내린다. 크리스천의 일을 왕업, 생업, 죄업으로 나누고, 각각의 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한다. 크리스천이 지켜야 할 일의 원칙, ‘생업에 힘쓰라’, ‘생업이 왕업이 되게 하라’, ‘왕업에 더욱 힘쓰라’를 성경적 관점에서 차근히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크리스천 직장인과 사업가는 일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며, 생업에서 왕업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직장 선교, 일과 소명을 고민하는 청년과 직장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 프롤로그에서
하나님 나라 신학이라는 신학적 성과와 일터 신학을 연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다. 특히 21세기 일터의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일터 신학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 신학을 바탕으로 일터 신학을 정립한다면, 그 기초가 탄탄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특별히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1세기 후반, 고대 로마 제국의 식민 도시 오스티아를 배경으로 가상의 교회와 인물들을 설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들려줄 것이다.
이어서 후반부에서는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하면서 얻은 결과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나는 일을 ‘왕업’(王業)과 ‘생업’(生業)과 ‘죄업’(罪業)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자 한다. 특히 크리스천의 일에는 왕업과 생업의 차원이 동시에 존재함을 제시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 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왕업은 일의 종말론적 차원으로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고, 생업은 일의 현실적 차원으로서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소설과 이론의 결합은 일종의 실험이다. 이러한 시도의 성공 여부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가늠하게 될 것이다.
# 본문에서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를 향해 항해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오스티아(Ostia) 항을 거쳐 테베레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오스티아는 당시 로마의 관문 역할을 한 덕에 꽤 번성한 무역항의 지위를 누렸다. 전 세계에서 온 곡물과 상품이 이곳을 통해 로마로 운송되었으며 로마의 인력과 물품이 이곳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로마에서 재판받기 위해 가이사랴항에서 배를 탔던 바울도 난파당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을 통과했을 것이다. _p.18
셉티무스는 이집트의 많은 민중이 그러하듯 오랫동안 곡물의 신 오시리스(Osiris)를 섬겨 왔다. 이집트인들은 오시리스를 가리켜 죽음과 부활의 신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셉티무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예수와 오시리스가 친족 관계는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_p.25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건설하신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뜻이라오.” “네? 나라라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뜻이란 말이오. 그 나라를 가리켜 ‘하나님 나라’ 혹은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부르지요.” 티투스의 말에 깜짝 놀란 셉티무스가 되물었다. “로마 황제 말고 누가 다스린단 말입니까? 그건 황제 폐하에 대한 반역 아닌가요?” _p.29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곧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이라오.” 그제야 셉티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하죠?” 티투스가 셉티무스의 등을 도닥도닥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은 그중 첫 번째를 말해 주겠소. 형제는 지금 코르넬리우스 형제의 집에서 주로 요리를 맡고 있다고 들었소만.” “네, 맞습니다.” “그 일을 열심히 하길 바라오. 자기 일을 절대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오.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 더 열심히 하시오. 그게 첫 번째요.” “그게 다입니까?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저 자신을 바치는 일이란 말씀인가요?”_p.36
“셉티무스 형제여, 형제는 나중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그 나라에 들어가서 일하게 될 줄 믿소?” “그럼요. 장로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나라에서는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서로를 섬기기 위해 일하게 될 거라고요.” “맞소. 바로 그 일을 하라고 교회가 맡기는 것이 바로 직분이라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니 말이오.” “직분이 그런 의미입니까? 저는 장로님과 같이 교회를 영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체 높으신 분들만 받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_p.54
코르넬리우스가 물었다. “사업가로서 제게 맡겨 주신 사명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형제님뿐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살며 생명을 유지하기를 원하시지요. 그 일을 온전히 감당하시는 것이 첫째 의무라오.” 코르넬리우스가 물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사명이라고요?” “물론, 다른 사명들도 있겠소만 그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사명이라는 말씀이오.” _p.76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힘과 지혜로 건설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건설되는 나라다. 우리는 다만 그 주권에 순복하여 그 나라를 받들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서 건설하기 시작하신 그 나라를 발견하고, 그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다. _p.125
크리스천은 교회에서 이 땅에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진짜로 중요한 것은 크리스천이 자신의 일터와 일상 가운데에서도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크리스천이 미래와 튜닝되어 있다면, 일터와 일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_p.135
작은 씨앗처럼 일터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무심히 넘기지 않고, 그것을 통해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으려면, 믿음과 소망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믿음과 소망의 능력을 통해 일터 가운데 역동적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사실, 소망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질이다. … 소망은 단순히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크리스천의 소망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지금 이곳으로, 곧 일터로 끌어당겨 와서 미리 맛보게 하는 능력이다. 바꿔 말하면, 소망은 크리스천이 미래에 튜닝되게 하는 기술이다. _p.142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를 부르신다면, 그것이 그의 소명이다. 소명은 우리 존재가 우연한 존재인지, 아니면 목적이 있는 존재인지의 문제이다.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그에게는 소명이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소명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인생은 없으며,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삶의 목적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때의 부르심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소명이다. _p.176
인간은 일을 하도록 창조되고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으며, 천국에서도 일할 것이다. 인간이 생명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이 필요하다. 하여 일은 생명의 다른 말이다. 일은 인간의 본질을 형성한다. 일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고 자기 존재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크리스천은 일할 때 당연히 죄악 된 일(죄업)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이 견지해야 할 일의 원칙은 무엇인가? _p.272
크리스천은 하나님으로부터 ‘생업에 힘쓰라’라는 소명과 함께 ‘생업이 왕업 되게 하라’라는 소명을 함께 받은 존재다. 크리스천은 생업을 왕업이 되게 함으로써 일을 하나님 나라와 연결할 수 있다. 생업을 왕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지켜야 할 7가지 원칙이 있다. _p.294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생업과 왕업의 소명을 모두 감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생애 기간 생업에 종사하시면서 먹거리를 얻으며 가족을 부양하셨다. 하지만 공생애 기간은 생업과 무관한 왕업에 온전히 헌신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직분(왕업) 소명을 감당하시는 동안 사역의 대가는 받지는 않으셨으나 생계비는 지원받으셨다(눅 8:3). 그러니까 예수님도 직업 소명과 직분 소명이라는 이중 소명을 받으셨고, 이를 온전히 수행하셨던 것이다. _p.347
| 추천사 |
| 감사의 글 |
| 프롤로그 | 두 가지 과제
1. 셉티무스의 소명 이야기
셉티무스, 크리스천이 되다
셉티무스, 천국을 맛보다
셉티무스, 소명을 깨닫다
셉티무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기로 하다
셉티무스, 왕업에 더욱 힘쓰다
셉티무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넘어지다
2. 코르넬리우스의 소명 이야기
코르넬리우스, 회심하다
코르넬리우스, 믿음의 사업가로서 거듭나다
코르넬리우스, 생업을 넘어 왕업에 이르다
코르넬리우스, 리더로 성장하다
코르넬리우스, 좁은 문을 선택하다
3. 하나님 나라가 일터로 임할 때
천국의 미래성과 현재성
일터와 하나님 나라
4. 다시 생각하는 소명
소명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왜곡
다시 생각하는 소명
5. 일의 기원: 왕업, 생업, 죄업
왕업(King’s Work)의 탄생
생업(Living Work)의 탄생
죄업(Sinful Work)의 탄생
6. 일의 운명: 죄업, 생업, 왕업
죄업의 운명
생업의 운명
왕업의 운명
7. 크리스천의 일의 원칙 1: 생업에 힘쓰라
생업과 일반 은총
생업의 원칙
생업과 세속적인 일
8. 크리스천의 일의 원칙 2: 생업이 왕업 되게 하라
왕업으로의 승화 원칙
일과 안식
9. 크리스천의 일의 원칙 3: 왕업에 더욱 힘쓰라
직분 소명의 신학
거저 주라
왕업에 더욱 힘쓰라
| 에필로그 | 일터에서 하늘은 사라지지 않는다
| 주 |
이 책은 기존의 일터 사역 신학서와 다르다. 사용한 단어부터 기존에 들어보지 못한 참신한 용어이며, 전체 내용은 물론 형식 또한 신선하다. 또한 신학서가 흔히 갖기 쉬운 딱딱함이나 지루함을 피하고자 일터 신학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론을 1세기 크리스천의 소명 이야기로 풀어 설명한다. 저자가 신학적인 냉철함과 문학적인 상상력을 두루 갖추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방선기 목사 일터개발원 이사장
크리스천의 일을 죄업, 생업, 왕업이라는 관점에서 탁월하게 조망한다. 또한 독자들이 세 범주 간에 일어나는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현실화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실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논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이 책을 통해 크리스천 직장인과 사업가는 막연하기만 한 천국을 일터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안정규 케냐 선교사 Good Foundation 대표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일터와 직장에 어떻게 임하는지 하나님 나라 신학에 기초해서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평신도 직장인으로서, 직장에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신학적 연구와 성경적 성찰 안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의 의미를 전하는 저자의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병주 변호사 평신도신앙실천운동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