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소개
‘1세기 기독교’ 시리즈 저자 로버트 뱅크스 적극 추천!
평신도교회 17년 여정에 깃든 ‘1세기 교회’ 이야기
“저자가 추구하는 평신도교회가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등 제 책들에서 그토록 강조하며 말해 온 교회론과 아주 유사함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가 한국에서 ‘평신도교회’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재현되어 온 셈입니다.” ―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기독교’ 시리즈 저자
이 책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열일곱 해가 걸렸다. 저자 송인수 ‘교육의봄’ 대표가 2008년부터 지금까지 17년에 걸쳐 ‘평신도교회’를 이루며 고민하고 씨름하는 가운데 나온 글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책을 낼 작정으로 쓴 게 아니라, 평신도교회를 살고 이루어 오는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이나 성찰, 강연과기고, 간증과 설교 등에 더해 새로 쓴 글들을 갈무리해 묶었다.
‘좋은교사운동’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설립한 교육운동가이기도 한 저자는 《평신도교회가 온다》를 통해 그렇게 17년 동안 평신도교회를 일구어 온 분투의 여정을 풀어낸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를 비롯한 ‘1세기 기독교’ 시리즈를 쓴 성서신학자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목회자 없이 평신도들만으로도 교회를 이룰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자신의 저서들에서 강조해 온 교회론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가 저자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평신도교회’에서 재현되어 온 셈이라고 평가한다.
이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 “신자란 누구인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저자의 삶의 고백 및 신자와 목회자, 평신도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2부 “목회자 없이 교회 없다?”는 본서의 가장 중심되는 내용으로, ‘평신도교회’를 왜 시작했으며 그 중심 원리는 무엇인지 설명한다. 3부 “부모가 아이 앞에서 성경을 들어야 한다”는 한국 교회와 부모가 견지해야 할 자녀 교육의 과제를 다룬다. 마지막 4부 “평신도교회 운영의 실제”에는 평신도교회를 이루기 위한 실제적인 절차 및 운영 지침과 함께 한국의 평신도교회 운동 흐름 등을 소개한다. 특히, 평신도교회에서 성장해 온 한 청년의 간증과 신자들의 주일 예배 말씀 나눔 사례가 아주 생생하고 흥미롭다. 책 말미의 ‘부록’에서는 평신도교회를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소개하는 추천 도서 목록이 실려 있다.
저자는 왜 굳이 가톨릭교회의 ‘사제’와 대칭되는 ‘평신도’라는 개념을 교회 앞에 붙이느냐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그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평신도-사제’ 개념이 극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백정, 노비, 기생 등 조선시대 신분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해서가 아니라 그 용어가 지칭하는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앞에 평신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 오염된 용어의 실체가 아직도 교회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우리의 수고와 헌신으로 마침내 그 부끄러운 실체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을 평신도교회에 대한 신학적‧성경적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쓰지 않았다. 교회를 이루고 살아 내는 삶이 먼저고 이론은 그 뒤에 온다고 믿기에, 지난 17년간 교회란 무엇이고 신자란 누구인지 온 몸으로 부딪치고 씨름해 온 ‘질문의 여정’을 담고자 했다. 저자는 《평신도교회가 온다》가 “신자는 누구이고 교회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든 평신도들과 목회자들, 신학자들께 의미 있는 자극”이 되기를 바라며, 여전히 질문을 지닌 채 교회를 이루어 가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 책 속으로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날 때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확정한 상태로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온 후에야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 고민은 청소년기에 절정에 이릅니다. 즉, 사람됨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태어난 후에 자신의 사람됨, 고유함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은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확정 짓고 교회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교회로 태어난 후 우리가 교회인 근거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생명이니까요. 따라서 그 질문이 멈춘 곳은 위험한 교회입니다. ― 15쪽, ‘머리말’에서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고귀한 존재,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신앙적 게으름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목회자의 부족한 설교 능력 탓으로만 돌리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영적으로 게으르게 살며 깨어 있지 않다 보니 중세 시대 가톨릭 신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의존적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혹은 ‘평신도는 원래 의존적인 존재’라고 규정하다 보니, 깨어 있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 48쪽, ‘평신도, 영광스러운 그 이름!’에서
한번 찾아보십시오. 그렇게 한 인간이 다른 한 존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치고 정상적인 관계가 있는가를 말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목회자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리더십의 존재도 인정합니다. 제 주변에 훌륭한 목회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존재가 없다면 교회는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더로서의 목회자를 인정한다 해도, 목회자 중심성과 목회자 의존성만큼은 배격해야 합니다. 대형 세습 교회들의 타락은 바로 그 의존성이 빚어낸 단면에 불과합니다. ― 52쪽, ‘목회자는 누구인가?’에서
평신도교회가 많아지는 것이 한국 교회를 약화시키는 일일까요? 사사 시대처럼, 평신도교회 신자들이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존재들인가요? 스스로 반문해 봅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시도가 없어도 이미 약화될 대로 약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한국 교회가 왜 약화되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성 안에 갇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에게 의존해서 그들이 먹여 주는 이유식만 먹고 살다가 영양실조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 69-70쪽, ‘평신도들이 교회를 세우면 한국 교회가 약화될까요?’에서
확신컨대, 이것은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한국 교회를 약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체질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게 속한 일원이 되어 교회를 품고자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재설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처럼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가고자 하는 사사 시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이 살아있는 초대교회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우리 앞에 ‘성경 말씀’이 있고,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시는 한, 신자와 교회는 결코 그릇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사사 시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사 시대는 말씀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성령이 소멸된 시대입니다. 자기 탐욕과 이익을 따라 자기 성을 쌓고 살던 시대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지 않는지 늘 돌아봐야겠지만, 한국의 일반 교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 74-755쪽, ‘목회자가 없으면 교회가 아닌가요?’에서
한국의 모든 기존 교회들이 목회자가 없는 교회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교회 형태는 앞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해도 한국 교회 안에서 무척 소수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교회 형태를 띠고자 하는 목적은, 목회자가 없어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교회가 가능하니,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고 신자는 누구이며 목회자는 무엇을 위해 부름받은 존재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는 촉구입니다. ― 82쪽, ‘목회자가 없으면 교회가 아닌가요’에서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의 제자로서 자기 생의 과제가 없고 오직 자기 이익을 확장하는 데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의 짐이 있어야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길을 하나님께 물을 텐데, 내가 할 만한 일이요 내 욕망 내 안전을 위한 길에 서 있는데 그분께 물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다가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한 채 자기 생각에 빠진 후 망하는 것입니다. 전문 신학자나 목회자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 94쪽, ‘평신도가 말씀을 전할 때 생기는 일’에서
예배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는 아이들, 집회 시간에 졸기만 하는 아이들, 반전을 시도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공과 공부 시간, 피상적인 주제의 정답 찾기 문답 교육, ‘자본주의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달란트 잔치’… 그나마 시험 기간이 되면 아이들이 참석하지 않아 주일학교는 된서리를 맞습니다. …
그러나 주일학교가 있으니 부모들의 책임감은 반감되고, 주일학교는 부실해서 아이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회와 기독교 가정에 머물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과거 D. L. 무디 시절처럼 길거리에 방치된 셈입니다. 그 대신, 입시 경쟁과 자본주의가 아이들을 맡아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로, 자본을 숭상하는 존재로 길러내고 있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 129-130쪽, ‘주일학교 시효는 끝났는가?’에서
우리가 각자의 신앙적 정체성에 대해 명료하게 답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매일 변하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 마음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고통과 필요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신의 한계나 교회의 한계 안에 가두지 않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가닿는 대로 교회 안과 밖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것, 우리는 이것을 위해 모였습니다.
저나 여기 계신 분들이 모든 기성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기성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굳이’ 평신도교회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의 고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교회의 과제로 삼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 159-160쪽, ‘평신도교회에서 자란 어느 청년 이야기’에서
교회사에 자주 등장하는 사례들처럼, 한국에서 나타난 평신도교회 역시 일시적으로 성장하다가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 조직마다 위계를 만들고 규칙과 재생산 구조를 만듭니다. 그런 체계를 한국의 평신도교회가 구축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칫 그 과정에서 평신도교회가 배격하는 목회자 중심 교회의 조직적 병폐를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며 온전한 교회로서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참된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다가, 어느 날 평신도교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역사 속 수많은 교회 동체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소멸된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 반드시 진리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신 질문에 대답할 뿐입니다. ― 285쪽, ‘한국 평신도교회의 역사를 살핀다’에서
추천사_ 한국 평신도교회에서 재현된 1세기 교회 이야기
머리말_ 생명은 태어난 후에야 자신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1부 신자란 누구인가
1. 나는 그분 앞에서 울 것이다
2. 신자란 누구인가?
3. 평신도, 영광스러운 그 이름!
4. 목회자는 누구인가?
2부 목회자 없이 교회 없다?
1. 평신도교회, 이제는 몰래 하지 않는다
2. 평신도들이 교회를 세우면 한국 교회가 약화될까요?
3. 목회자가 없으면 교회가 아닌가요?
4. 평신도가 말씀을 전할 때 생기는 일
5. 감히 집사가 설교를!: 스데반과 빌립
6. 평신도교회에도 족보가 있다
3부 부모가 아이 앞에서 성경을 들어야 한다
1. 주일학교 시효는 끝났는가?
2. 부모가 아이 앞에서 성경을 들어야 한다
3. 상급을 가불해서 제 아들에게 주십시오
4. 평신도교회에서 자란 어느 청년 이야기
5. 선생님 소리가 제일 시끄러웠어요!
4부 평신도교회 운영의 실제
1. 교회 시작과 운영을 위한 9가지 질문
2. 교회의 고백과 신조
3. 교회 말씀 나눔의 원리와 실제: 깊이 읽기, 나를 집어넣기, 상상하기
4. 말씀 나눔 사례①: 마리아를 주목하신 예수님
5. 말씀 나눔 사례②: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
6. 한국 평신도교회의 역사를 살핀다
부록_ 평신도교회 공부를 위한 추천 도서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평신도 중심의 소규모 신앙 공동체가 확산되어 왔습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 이 흐름을 촉발한 분 중 한 명인 송인수 선생이 이와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들입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쓴 글이라기보다는 평신도교회를 이루는 여정 속에서 그가 경험하고 고민한 것을 풀어내거나,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거나, 또는 평신도교회를 향한 주변의 비판이나 우려에 대해 대답하며 정리한 실제적인 기록입니다. 그런 현실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정리한 기록들이기에 글이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송인수 선생은 《평신도교회가 온다》를 통해 평신도교회 생활의 실제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성경적’으로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는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라는 점과 예수의 제자로 교회를 넘어 세상 속에서 삶을 사는 데 성령의 임재와 열매와 능력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 속에는 개혁주의자들과 아나뱁티스트 지도자들 같은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의 통찰이 담겨 있으면서, ‘좋은교사운동’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이끌며 자신이 얻은 신앙적 통찰도 매력적으로 가미되어 있습니다.
― 로버스 뱅크스, ‘1세기 기독교’ 시리즈 저자